[세상 이야기]/프린터 뉴스

흑백 인쇄만 하는데 칼라 잉크가 왜 필요해...

단빈의 잉크 세상 2009. 1. 7. 01:04

 

 

요즘은 집집마다 간단한 인쇄를 위해 간편한 프린터 한 대 정도는 갖고 있다.

 

보기와 달리 프린터 가격은 저렴한 반면 잉크 값이 비싸고, 잉크를 팔아 돈 버는 것이 주목적이라는 것도 대부분 아는 상식이다.

 

작년에 귀농 후 10만원대의 프린터 한 대를 새로 구입했다. 잉크 값이 비싼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 컬러 인쇄를 할 때도 있을 것 같아 저렴한 가격의 E사 잉크젯 컬러프린터를 구입했다.

 

인쇄 방식도 절약형으로 설정하고, 컬러 인쇄는 꼭 필요할 때만 했으며, 가능하면 흑백으로 프린터를 사용했다. 그래도 잉크는 '억' 소리 날 정도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교체 비용도 적잖게 들어갔다.

 

흑백인쇄만 하는데 컬러잉크가 왜 필요?

 

얼마 전 인쇄가 되질 않아 점검해 보니 모든 잉크통이 바닥났다는 표시가 떴다. 컬러 3개, 검정 잉크 1개로 설정된 프린터의 잉크 값을 알아보니 1개당 1만 3900원이었다. 앞으로는 절약을 위해 가능하면 흑백 인쇄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할인매장에서 흑백 잉크 1개를 구입해 설치한 후 인쇄를 클릭했다. 흑백으로.

 

그런데? 인쇄가 되지 않았다. 모니터에 컬러 잉크 잔량이 없으니 충전하라는 표시가 떴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컬러인쇄도 아니고 흑백 인쇄만 하려고 검정 잉크를 새로 설치했는데 왜 인쇄가 안 되지?'

 

아내가 옆에서 거든다.

 

"컬러잉크가 없어서 그런 거 아냐?"

"컬러인쇄도 아닌데 왜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냐?"

 

몇 번을 시도해도 반응은 동일했다.

 

1만 3900원을 주고 흑백 잉크를 새로 교체했지만 프린터는 여전히 고물덩어리처럼 반응이 없었다. 영 기분이 꿀꿀했다.

 

며칠 후, 결국 시내 나가는 길에 컬러잉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고장도 나지 않은 프린터를 포기할 수는 없어 컬러잉크를 사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흑백 잉크를 사서 설치했는데 왜 흑백 인쇄가 안 되는 거죠?"

"그래요?"

 

직원도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직원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전투 의욕(?)이 다시 생긴 나는 다시 좀 더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잖아요, 컬러인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검정 잉크를 끼면 흑백 인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 말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이던 직원은 알아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한참을 지나 올라온 직원은 매장에선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해당 프린터사와 전화연결을 해주겠다고 했다.

 

원래 그런 제품이니 어쩔 수 없다고?

 

얼마 후 프린터사 직원과 전화가 연결됐다. 답변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제품이 만들어질 때 4개 잉크 중 한 개라도 바닥이 나면 인쇄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컬러든 흑백이든.

 

"아니 컬러인쇄를 하는데 컬러잉크가 없어서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데, 왜 흑백 인쇄를 하는데 흑백 잉크만 있으면 되지, 컬러잉크가 몽땅 있어야 하는가요?"

 

회사직원은 제품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계속 답변했다. 책임자도 아닌 직원과 계속해서 입씨름해 봤자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기분은 불쾌했고 컬러잉크 3개를 사려는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기업 상품 팸플릿의 홍보 문구를 읽어봐도 그런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구입한 흑백 잉크도 반품하고 싶었지만 이런 속내를 알지도 못하고 구멍을 뚫어 교체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상품의 속내를 이해 못한 내가 바보인 건가.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다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매장 직원을 뒤로 하고 문을 나섰다.

 

이제 남은 것은 울며 겨자 먹기로 컬러잉크 3개를 추가로 구입해 인쇄를 하든가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1만 3900원짜리 흑백 잉크만 끼워 놓은 채 프린터를 방치하든가, 둘 중에 하나였다.

 

잉크 하나라도 더 팔아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이해한다 치더라도 소비자의 인쇄 선택권조차 기업의 이윤 속에 뭉개 버리는 대기업의 치사한 상술에 서민들의 주머니만 더욱 초라하게 만든 사건(?)이었다.